강원도 잘알(잘 아는 사람들)들과 함께 다니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아주 좋은 명당으로 나를 모셔다준다. 평창 육백마지기 역시 그런 장소였다. 별 보러 가는 장소니 단디 입으라는 말에 레깅스 위에 추리닝을 껴입고, 티셔츠 두 개나 걸쳐입고 후드를 입고 그 위에 패딩도 입는 뚱뚱이 기법을 펼쳤다. 차에 탑승하고 머지 않아 보이는 '육백마지기가는길' 비석. 도대체 여기가 뭐길래 그래?
육백마지기는 알음알음 아는 차박 명소이다. 평창 미탄면에 위치한 청옥산 정상을 가리키는데 무려 해발 1,200m가 넘으며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라 하여 '육백마지기' 라고 부른다. 한국 최초의 고랭지 채소밭 역시 여길 가리키고 있다. 요즘에야 당연히 자동차로 쉽게 올라가지만 예전에는 이 춥고 어둡고 차가운 땅을 어떻게 개간하여 농사를 지었는지 여간 신기할 따름이다.
해가 지기 전 일찍 올랐다. 겨울철 교통사고 위험으로 지역 주민을 제외하고 외지 관광차량은 올해 12월 1일부터 교통 통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겨울엔 보기 힘들고 내년 해빙 이후에나 통행이 재개되는 지역이다. 나는 평창 군민과 함께했다. 내가 운전했더라면 올라오기 쉽지 않았을 정도로 길이 매끄럽지 못했다. 어떻게 여기서 차박을 한다는 건지 신기하기만 했다.
육백마지기에서 가장 유명한 풍경인 풍차들.
조용하고 고요하게 돌아가는 풍차 밑으로 미리 쌓인 눈이 보인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라 벌써 쌀쌀함이 느껴졌고, 해발 1,200m가 넘는 지역이라 그런지 바람도 많이 불었다. 나야 한겨울에 도착해서 이리 춥다고는 하지만 12월 이전에, 뭐 10월이나 11월만 되어도 몹시 추울 것 같은데 이곳에서 차박을 한다고? 너무 추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주변 시설이 엄청나게 잘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차박하기엔 몹시 열악하다 느껴질 따름이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차가운 평창엔 어둠이 금방 찾아들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고선 곧바로 찾아온 밤. 여기의 별천지가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 추위를 뚫고선 나를 이곳에 데려왔나, 제법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뭐 이것저것 많다던데 내려서 볼 날씨가 도저히 아니었다. 5분만 잠깐 차에서 내려도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추위가 찾아왔다.
오후 6시 9분.
평창군. 청명함.
최고온도 -15도. 최저온도 -21도.
가히 기록할만 한 추위였다.
어둠이 찾아오자 주위가 더욱 고요해졌다. 우리 빼고 다른 차량은 한 대 더 있었다. 피곤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눅진한 어둠이 아니고 고요한 가운데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깨끗한 어둠이었다. 여름엔 데이지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데 여름의 밤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사진엔 채 담기지 못한 수많은 별들은 눈으로 잘 담고 왔다. 사람이 많았다면 도리어 느끼지 못했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추위를 무릅쓰고 내려 눈으로 별을 올려다본다. 이게 별이구나. 내 주위에 별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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